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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수 교지 및 고문서 일괄

상세설명

  • 관리부서 : 산청군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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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정보

김응수의 증직 교지 2점과 그의 처 정씨 추증 교지 2점 및 김응수의 증직과 정려에 관한 예조입안 그리고 김응수의 후손이 편찬한 우담집과 호산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김상도(金尙禱, 1781-1851)와 김종호(金鍾皥, 1831-1907)의 생존시기 동안 산청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 및 지역사와 국사에 연관되는 여러 사실과 시문이 남아 있다.

개요

김응수의 증직 교지 2점과 그의 처 정씨 추증 교지 2점 및 김응수의 증직과 정려에 관한 예조입안 그리고 김응수의 후손이 편찬한 우담집과 호산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김상도(金尙禱, 1781-1851)와 김종호(金鍾皥, 1831-1907)의 생존시기 동안 산청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 및 지역사와 국사에 연관되는 여러 사실과 시문이 남아 있다.
김응수 증직 교지 2점은 내용이 동일하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 참여하여 공로를 세운 절충장군(折衝將軍) 행(行)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김응수(金應秀)를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兵曹參判) 겸(兼)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에 증직한다는 공문서이다. 작성 시기는 동치(同治) 6년(1867) 9월 모일로 되어 있다.
예조(禮曹) 입안(立案)에 의하면, 김응수의 부친은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해를 당했다. 그리고 모친도 왜적에게 팔을 끌리는 욕을 입다가 칼로 적을 죽인 후 자신의 팔을 불결하다고 여겨 끊어버리고 운명했다. 김응수는 부모의 피해를 보고서는 칼을 주조하여 ‘보수(報讐)’라는 두 글자를 새기고 왜적을 추격하여 무수히 죽였으며, 난이 평정되자 항상 칼을 어루만지며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620년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主簿)에 제수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 평정하는 일에 참여하여 공로를 세웠으므로,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권(錄券)되었다. 그 후 1867년에 나라로부터 증직 및 정려가 내려졌으며, 후손에게 제반 잡역을 면제하는 은전이 주어졌다.
숙부인 증직 교지 2점은 내용이 동일하다. 남편 김응수가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훈련원도정으로 증직됨에 따라 숙부인(淑夫人) 정씨(鄭氏)도 법전에 의거해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한다는 공문서이다.
예조입안은 김응수(金應秀)의 충효를 포상하여 1867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하고 1868년 정려를 내렸으며 후손가에게 제반 잡역을 면제하도록 한 일을 예조에서 증명한 공문서이다.
우담집은 2권으로 우담집 제1책(중편 하권)의 내용은 1903년 김종호(金鍾皥)가 작성한 「우담집서」가 권두에 실려 있다. 다음으로 「행장록(行狀錄)」이 기록되어 있는데, 작자가 밝혀져 있지 않다. 아마도 김종호가 찬술한 것이 아닌가 추론된다. 이 두 편의 글 아래에 ‘우담집구본(愚潭集舊本)’이라 표기한 후, 한시 작품이 5면에서 110면 끝까지 수록되어 있다.
우담집 제2책(하편 하권)은 한시 작품이 1면에서 23면까지 수록되어 있다. 24면부터 27면 상반부까지는 기유년(1849)에 대왕대비 순조비(純祖妃) 순원왕후(純元王后)의 회갑을 맞아 고을의 수령이 잔치를 마련하여 초청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부기한 후, 노쇠하여 참석할 수 없음을 고하는 상서(上書)와 감회를 읊은 한시 한 수를 기재했다. 그 아래에 헌종(憲宗)의 승하를 애통해하는 한시 1수 및 심회를 토로한 2수의 작품이 실려 있다.
28면 하반부에서 41쪽까지는 6세조(또는 5세조) 김응수(金應秀)가 1624년 이괄의 난에서 세운 공로와 목숨을 바친 충절에 대해 국가의 공인과 포상을 청원하는 1822년ㆍ1824년 2차례의 상소 및 관련 자료들이 기재되어 있다.
42면부터 53면까지는 1849년 헌종이 승하한 당시에 순원왕후가 장례 절차를 조처하는 하명을 기록하고 있다.
55-56면에는 「심성서(心性序)」라는 서문과 「중용(中庸)」, 「인심도심(人心道心)」, 「이기(理氣)」, 「성리(性理)」, 「성명도교(性命道敎)」, 「도불가리(道不可離)」, 「삼강(三綱)」, 「오륜(五倫)」, 「현우(賢愚)」 등의 오언고시(五言古詩)가 실려 있다. 이후 57면부터 65면까지는 한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67면에서 88면까지는 저자의 별세를 애도하는 만시가 부록되어 있으며, 89면에서 92면까지는 추모하는 제문이 실려 있다.
이후 93면에서 104면까지는 여러 가지 내용을 기록한 잡록(雜錄)의 형식을 띠고 있다. 95면 상반부까지는 역대 재상, 명필, 삼학사(三學士), 사대신(四大臣), 팔은(八隱) 등을 기록하고 있다. 95면 하반부에서 98면까지는 팔도민결도총(八道民結都摠), 삼남민결합(三南民結合), 조선물화일본거기(朝鮮物貨日本去記), 일본물화조선래기(日本物貨朝鮮來記) 등을 적어놓았다. 99면부터 끝까지는 매태법(埋胎法), 혼서규식(婚書規式) 등을 필기했다.
호산집은 1권으로 문집의 내용은 총 144면으로, 1면에서 22면까지는 선조 김응수가 이괄(李适)의 난에서 세운 공로에 대해 국가의 공인과 포상을 청원하는 상소 및 관련 자료가 기록되어 있다.
23면에서 124면까지는 저자가 지은 한시 작품과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125면부터 128면까지는 저자의 부친인 김상도와 순조(純祖)의 장인이자 이조판서를 역임한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이 창수한 한시 작품을 함께 실어놓았으며 129면부터 144면까지는 제문, 송서신문(送西神文), 소태방(燒胎方) 등을 써놓았다.

문화재지정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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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구분 지정번호 지정일 제작연대 시대
문화재자료 581 2014.03.20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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