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학가 정취암
문가학가 정취암
고려말기에 신안면 소이리에 문가학(文可學)이란 분이 살고 있었다. 그는 소시(少時)에 형인 가용(可庸)과 함께 재질이 뛰어나 모두 문과에 등과하여 가용은 학유(學諭)가 되고 가학은 내한(內翰)벼슬을 하였다. 가학이 소시에 둔철산 정취암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정월 초하루가 가까워지자 절에 있는 스님들이 모두 절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피신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은즉 스님들이 대답하기를 설날 밤이 되면 요사한 괴물이 나타나서 나이 어린 상좌중에서 얼굴이 예쁜 사람을 골라잡아 간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가학은 그런 요사한 괴물 때문에 장부가 비겁하게 도망 갈 수야 있는가 하고는 너희들은 비록 피신을 하되 등에 불을 밝혀 놓고 한동이와 안주를 갖추어 내 책상 밑에 두고 가거라 내가 시험해 보리라 하였다.
밤이 깊어지자 과연 한 젊은 여인이 창밖에서 방안을 엿보다가 서성거리며 몇 차례 들어오려고 하는지라 가학은 서슴없이 들어오라고 하였다. 보자 하니 곱게 단장한 미인이 긴 옷자락를 끌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가학은 반기듯이 손을 끌어 앉히고 여기 술과 안주가 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있는가하며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환담을 나누다가 이럭저럭 한동이의 술을 다 마시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그 여인은 술이 취하여 골아 떨어졌는데 살펴보니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닌 한 늙은 여우였다. 가학은 곧 새끼줄로 묶었다. 밤이 새길 기다려 스님들이 모여 들면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러자 여우는 울며 호소하기를 나에게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둔갑하는 비술책이 있으니 그대가 만일 나를 살려 주신다면 그 책을 드리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가학은 마음으로 기뻐하였으나 혹시 속임을 당할까 보아 다시 긴 줄을 허리를 단단히 묶고 그를 따라갔다. 그리하여 여우는 석벽에 이르더니 그 위에 뛰어 올라 푸른 책 한권을 입에 물고 내려 오는지라 이것을 받아 보니 역시 둔갑술을 적은 책이므로 일단 풀어주고 그 내용을 자세히 살피던 중에 여우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잠깐 사이에 그 책 끝장을 찢어 입에 물고는 석벽을 타고 올라 종적을 감추었다.
가학이 그 후 글에 쓰인 내용대로 시행을 해보니 과연 뜻대로 되는지라 신통한 비방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둔갑술은 할 수 있어도 완전히 몸을 감출 수 있는 장신술(藏身術)은 완성하지 못하여 몸에 달린 옷고름을 감출 수 없었다. 장신술을 적은 끝장은 여우가 찢어 입에 물고 간 것이다.
가학이 그 후 문과에 등과하여 내한벼슬을 하고 있던 중에 새가 되어 공중으로 들어갔다가 발각이 되므로서 죽음을 당하고 나라에서는 소이리에 있는 그의 집을 헐어서 불 태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운창지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또 야설에 의하면 가학은 서울에서 새로 둔갑하여 은(銀)기둥을 몰고 이곳에 날아왔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