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골의 애화
승지골의 애화
청계리 뒷산에 있는 한 골짜기의 이름은 승지골이라 한다. 승지 벼슬을 하던 분이 묻혀 있으므로 그렇게 부른 것이라 한다. 옛날 이곳 어느 집안에 선비가 있었는데 결혼을 한 후 아내 덕분으로 공부를 하고 과거를 보게 되었다. 정성껏 여비까지 마련하여 주면서 과거를 보게 한 아내의 고마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꼭 과거에 급제하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선비의 어머니는 너무 며느리를 학대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무엇이던 며느리가 하는 일이면 불만이었고 성격도 일반사람과 판이하게 달랐다. 선비는 아내를 돌아보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꼭 참고 기다려 주오”하고 몇 번이나 당부를 하였다.
그런데 기다리던 남편은 3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시어머니의 구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이제는 남편을 쫓아낸 죄인으로 몰아 세워 지체 없이 집을 떠나가라는 것이다. 호령이 떨어진 후에도 차일피일 기다렸다가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 하는 수 없이 보따리를 챙겨 쫓겨나게 된 며느리는 친정으로 돌아갔으나 식구들은 죽어도 시집에서 죽으라고 하며 내어 쫓는다. 갈 곳이 없는 여인은 다시 시댁으로 돌아와 애걸하였으나 끝내 받아주지 않는다. 이제 한갓 길을 잃은 여인이 되어 머리를 돌릴 곳이 없었다. 가다가 울며 울다가 가는 발길은 어느덧 지금의 대현촌 뒷산 신행당 고갯길을 올라가는 조그마한 골짜기로 빠져들고 거기서 숨을 끊었다.
그 뒤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풀베러 가다가 발견하고 수소문한 결과 신분이 밝혀져 그 자리에 묻게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골짜기를 여인의 원한 맺힌 골이라 하여 이름 따서 “홍계 맷골”이라고 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기다리던 남편은 과거에 급제하여 “승지”벼슬을 하고 있다가 임금으로부터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는 간곳이 없어 알아본즉 그 여인은 좋은 사람을 찾아 집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믿기 어려워 다시 캐고 물으니 사건 내용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내가 떠날 때에 그렇게도 당부를 하고 또 했는데도“ 하고 생각하니 아내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죄책감도 금하기 어려웠다. 며칠동안 집에 머물고 있다가 상경하는 길에 처가로 발길을 옮겼다. 처가에서 아내의 소식을 자세히 듣게 된 승지는 다시 부인의 무덤을 찾아 통곡했다. 부인의 원한도 풀지 못하고 가정도 다스리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승지인가? 하고 스스로 회의하며 번민하여 가슴을 치고 쓰러졌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이 부부의 원한이 맺힌 이 골짜기를 벼슬의 이름 따라 “승지골”이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