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탐방

심적사 나한전

산청에 얽힌 전설ㆍ설화이야기

심적사 나한전

산청읍 지리에 있는데 서기 929년(신라 경순왕 3년)에 처음 세워질 때에는 지금의 내리에 있었다고 하며 6.25동란으로 소실된 뒤에 서기 1950년경 동봉화상이 삼봉산 희룡동으로 옮겼으나 16나한을 봉안할 별전이 없던 중에 서기 1976년 나한전을 건립하여 22구의 작고 다양한 형태의 부처를 안치하였다.

나한암에 대한 전설로는 옛날 강원도의 어느 절에서 한 스님이 잦은 난리를 피하여 22구의 나한불을 멱서리(짚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 짊어지고 산음 땅에 들려 지금의 내리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밥때가 되어 마을에 들렸다가 돌아와 보니 나한불이 없어졌으므로 사방을 둘러 찾아본 결과 심적사 절 뒤의 숲속으로 흔적이 있어 따라가 보니 등 넘어 소슬한 절벽의 한 바위틈에 부처가 모여 있었다. 이상히 여긴 스님이 그곳에다 나한암을 지어 부처를 안치하였는데 한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교통이 끊긴 나한암에 식량과 불씨마저 떨어진 채 동지를 맞게 되었다.

스님 한분이 외로이 절을 지키면서 팥죽도 못 먹고 굶고 있는데 동짓날 아침에 부엌에 나가보니 따스한 팥죽 한 그릇이 부뚜막에 놓여 있고 불씨도 피고 있었다. 이 뜻밖의 사실에 놀란 스님이 팥죽을 들고 불당에 들어가 살펴보니 한 부처의 입술에 팥죽이 발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상히 여기고 겨울을 지낸 뒤 이듬해 봄에 스님이 탁발하러 산 넘어 마을에 가게 되었는데 지금의 삼장면 홍계였다고 한다. 한집에 들어가니 주인이 묻기를 어느 절에 왔느냐고 하므로 심적사 나한암에서 왔다고 하였더니 주인이 반기면서 지난 겨울 눈이 많이 온 동짓날 새벽에 나한암 상좌가 찾아왔기에 팥죽 한 그릇을 먹인 뒤 스님이 한분 있다고 하므로 한 그릇 팥죽과 불씨를 주어 보낸 일이 있는데 밤길에 잘 도착하였더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즉각적으로 동짓날 아침에 있었던 기적이 머리에 떠올랐고 팥죽의 주인과 그리고 입술에 팥죽이 발린 나한부처의 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한암에 돌아온 스님은 더욱 부처님을 알뜰히 모셔서 신심을 굳혔다고 한다. 지금도 나한암터에는 많은 흔적이 옛 암자의 내력을 말해주고 있다.